<개요>
-원형이론이란?
- 페르소나
- 그림자
- 아니마와 아니무스
- 양성성이 개발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원형이론이란?
집단 무의식을 더 세세하게 표현한 것이 '원형 이론'입니다. 원형은 집단무의식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한번 생각해 볼까요? 우리 인류는 엄청나게 오래 적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한 기억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원형은 정말 다양하게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태양, 남자, 군인, 학자 원형, 어머니 원형 등이 정신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대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고, 유럽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태어난 어머니들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각각의 어머니들은 각자 개인적 환경이 달라서 모두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의 모습들을 가질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지적이고, 차분하다면 어떤 어머니는 와일드하고 터프하겠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머니들은 누가 봐도 다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다 다른 환경에서 있어서 개성은 다 다르지만 어머니라는 공통된 정신적 원형들이 녹아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경험한 것은 굉장히 많으니, 태고적부터 물려받은 정신적인 원형들도 상당히 많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태어나면 육체가 점점 발달합니다. 그런데 융은 정신 즉 인격이라는 것도 발달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발달을 한다는 것은 곧 인격에서 더 나은 단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성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융이 말하는 인격의 성숙이란 내 안에 무수히 많은 잠재된 원형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의식화하고, 이들을 통해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만의 색깔로 원형들을 개발해 내어 최종적으로 자기실현을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러한 인격의 성숙을 목표로 해야 하고요.
페르소나
우리가 배운 집단무의식에는 원형들이 있다고 위에서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의식에 주로 자아에 속해있는 원형들을 먼저 의식화를 해야 하는데 그것들이 페르소나와 그림자라고 하는 원형입니다. 먼저 페르소나에 대해 살펴봅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살다 보니 사람을 대할 때의 '나'가 있습니다. '사회적 가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역할에 따라 '나'가 달라집니다. 선생님 역할을 할 때의 나, 친구 역할을 할 때의 나, 사회에서 보이는 나가 다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가면을 쓰는 이유는 잠재적으로 사회에 좋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사회에 순응하려는 '원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문제는 개인이 자기가 하고 있는 역할에 지나치게 빠져버려서 나와 가면이 동일시할 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잘한다고 생각해 자만해지고, 남에게도 자신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종용할 수 있습니다. 또는 페르소나가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은 자기가 생각했던 것만큼 기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 스스로 열등감과 자책감에 몰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적당한 페르소나는 필요하지만 페르소나에 압도된 사람은 본래의 자기를 잃게 돼서 자기도 모르게 불안을 겪기 때문에, 페르소나를 작게 하도록 어떤 형식을 빌려서든 표현되어야 하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그림자
페르소나에는 이면에는 그림자라는 원형이 있습니다. 그림자는 다른 원형보다도 기본적이고 동물적 본능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의 역사 속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고, 잠재적으로도 가장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특히 동성인 사람과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데 그림자가 자아에 받아들여져 정신 속에 조화롭게 잘 있으면 동성과 관계가 좋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그림자가 자아에 쫓겨나서 무의식 속으로 숨어 있으면 어떤 나의 모습과 닮거나 싫은 부분을 투사시킬 가능성이 높아져서 관계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림자의 어두운, 나쁜 그런 요소는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무의식 속으로 잠시 도망갔을 뿐, 만일 위기가 발생하거나 어려운 환경에 부딪히면 그 틈을 타서 그림자가 자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이 완치된 환자가 잘 지내다가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불행한 장면을 만나면 그림자는 자아가 약해진 틈을 타 자아의 저항을 받지 않고 나와 알코올 중독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그림자에 내포된 동물적 정신을 길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강한 페르소나를 키워 길들일 수 있는데요. 대신 자발성, 창조성, 강한 정서, 깊은 통찰력이 줄어드는 대가를 치릅니다. 즉 그림자를 거부하거나 그림자 없는 생활은 인격이 무미건조해지거나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즉 개인은 자아와 그림자가 조화를 잘 이룰 때 생기와 활력이 생깁니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적절하게 배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계속해서 그림자가 억압받고 배출되지 못하면 훗날 본능의 큰 파도가 밀려와 더욱 자아를 억눌러 무너지고 말 수 있습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아가 자기(Self) 로 가는 것이 '자기실현'이라고 했는데요. 자기실현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핵심 개념 중이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공통 기억 중에는 남성의 기억과 여성의 기억이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설령 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났다 하더라고 여성에 대한 심리학적 기억을 가지고 있고, 여성으로 태어났다 해도 남성에 대한 심리학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성의 무의식에 있는 여성성을'아니마', 여성의 무의식에 있는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합니다. 반대 성의 원형이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태고 때부터 만물의 모든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은 내 안의 엄청난 많은 잠재된 것들이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기억과 여성의 기억은 단순히 겉모양적인 성질이 아니라 기능으로서 중요한데 마치 남자로 태어났지만 우리가 여성적 기능을 활용해야 될 때가 많은 것처럼, 남성으로 태어났어도 여성성이 전혀 개발되지 않으면 이 남성은 삐뚤어진 방식으로 여자를 대하고, 아니면 이성과 교류나 소통을 잘 못할 수도 있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또 예를 들면 우리가 남성성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추진력이 있고 결단력도 있고 좀 더 이성적인 점들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만나봤는데 자세히 알고 보니 공감도 잘해주고 배려심도 깊고 수용적이고 다정다감하고 편안하게 대하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반대로 여성들은 여성적인 면도 있지만 그와 반대되는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추진력이나 결단력, 용기 있는 모습들을 보면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남성성과 여성성의 두 가지 면이 모두 함께 하는 양성적 인간일 때 스스로도 편하고 만족스러워 하지만 타인도 그 사람을 믿음직스럽게 여기고 어울리고 싶어 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런 반대상의 심리적 원형, 즉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를 누구나 잠재적으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반대되는 원형들을 잘 발달시키고 사용하면 훨씬 더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양성성이 개발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내안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잘 다듬지 않고 사용하지 않은 사람, 즉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를 계속 배척하고 거부당했다고 치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이 강한 문화 속에서 고착되어 내 안의 존재하는 아니마와 마니무스를 계속 거부한다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언제든 미성숙한 상태 혹은 이상한 방식으로 타인을 투사하거나 투영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성숙하고 열등한 상태의 남성성이 투사되고 투영돼서, 이상하게 계속 미숙한 상태의 남자나 여자를 고르거나 너무 반대 지점의 여성이나 남자를 고른다거나 등등 '난 왜 이렇게 나쁜 남자를 만날까?', '난 왜 이렇게 연애가 안되지?' 하는 이유들을 살펴보면 바로 내 안의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상당히 열등하고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성답게 보이고 남성스럽게만 행동하는 남성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오히려 내면이 약하고 복종하는 특징을 보이거나,여성성이라고 지칭된 공감능력, 배려, 사랑을 오히려 싫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여성은 남성의 외적 행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완강함과 고집스러운 성질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남성스러움만 추구하던 옛날 원시시대에는 사냥 같은 것들을 통해 남자의 육체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현대에는 오히려 조직에서 순종적이고 말 잘 듣고 부드러운 남자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유롭게 발달하려는 자기실현 욕구가 차단되는 위기인 시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아가 자기로 가는 자기실현을 하는 데 있어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개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신의 양성성을 골고루 개발하고 억압된 것들을 깨어져 나와야 진정한 '자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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