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무의식을 알아야 하는 궁극적 목적과 이유, 자기(Self) 완성
- 만약 무의식이 주는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중년에 오는 위기
- 심리학과 종교, 심리적으로 종교가 있으면 좋은 이유
무의식을 알아야 하는 궁극적 목적과 이유, 자기(Self) 완성
융은 무의식이 가진 치유의 힘을 가르쳐 주고 싶어 했던 학자입니다. 무의식이 주는 메시지를 믿고 적극적으로 자기(Self)를 인식하려는 노력을 하면 자아가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길로 잘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의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까요? 바로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번시간에 배웠던 집단무의식의 원형들(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을 '의식'함으로써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태양계의 중심이 태양이듯이 인류의 경험과 기억들이 차곡차곡 모아진 집단 무의식에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자기'라고 하는 원형이 있는데요. 영어로 Self라고 합니다. 이는 자아랑은 다릅니다. 자아는 내가 눈뜨고 지금 떠오르고 있는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 의식척 차원의 작은 나입니다. 영어로 ego라고 하는데요. 근데 자기(Self)는 눈 떠있을 때만 자각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무의식까지 포함하는 것들을 인지하는, 내 안의 무궁무진한 것까지 감지하는 나를 자기(Self)라고 합니다. 즉, 자아보다 훨씬 큰 '나'입니다. 이 자기(Self)라는 원형은 자아랑 긴밀하게 작동하려고 합니다. 자아(ego)가 자기(Self)한테 메시지를 계속 보냅니다. '너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닐걸', '너 정말 너의 모습 그거 맞아?', '무의식엔 네가 모르는 네가 있어'.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자아도 늘 자기를 궁금해해요. '이게 내 모습 일까?', '내 모습이 이게 진짜 맞을까?' 이처럼 자아도 자기(Self)를 불러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아(ego)가 자기(Self)로 가려는 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이처럼 자아(ego)가 자기(Self)가 되려고 하는 의지, 이것을 '자기실현'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인격발달의 궁극적인 목표도 '자기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기(Self)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자기(Self)가 보내는 메시지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전인적 인격 발달을 이룰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교육의 목표는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아(ego)가 자기(Self)를 인식하고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랜 기간의 인내와 훈련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체험과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체험과 교육이라는 것은 자아가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와 같은 무의식적인 원형들이 주는 메시지를 깨닫고, 이를 포용하면 비로소 치유가 되고 자기(Self)가 완성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인간의 본 것입니다. 자기만의 바식으로 개성화를 거쳐 충분히 조화롭게 발달시켜야 자기가 어느정도 완전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는 그런 노멀한 삶을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인생 전반기에 자기의 방향이 외부로 지향되어 현실 속에서 자기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어렸을 때는 유전자 지도대로 살고, 나를 양육하는 사람들의 방식으로 살지만, 20대가 되고부터는 사회생활하면서 페르소나도 써보고, 그림자도 억압해 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아가 시도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중년쯤에 돼서 한계가 슬슬 옵니다. 대략 35세 이후부터를 중년으로 지칭하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슬슬 아니마, 아니무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자아가 자기로 가야 하는 시기가 됩니다. 그래서 보통 이즈음에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가?, 나는 뭐지?, 난 잘 살고 있나? 이런 의문들을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렸을 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 의사가 되어야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잘 나가는 의사가 되었고 의사로서 열심히 살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해집니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살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삶을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사람처럼 내면의 목소리, 자신의 무의식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살고 있었다면 언젠가 문제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제2의 사춘기 같은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많이들 자기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융은 이런 사람들을 만나 자기가 원하는 자기 모습을 찾고 통합시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살아가도록 말도 하고 이끌어주었다고 합니다. 내 안의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으로 무한한 자원을 발굴해서 깨워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우리는 계속 자기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들리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기만 하면 정신의 발달이 잘 되어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해도, 혹은 이런 것들을 다 배웠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서라던가 의식주부터 해결해야 하다 보니 매일 돈만 벌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픈데도 어찌어찌 살게 됩니다. 그렇지만 중년기 이후에도 계속 자기 원형, 자기가 주는 메시지들을 무시하면 괴로울 거라고 융은 말합니다. 그걸 계속 배제하면 삶이 무기력해질 수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권력을 휘두르려고 할 수도 있어요. 나의 내면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그림자가 타인을 투사시키고, 투사가 된 행동에는 감정이 반응하고 이 감정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인간관계가 엉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과 종교, 심리적으로 종교가 있으면 좋은 이유
이렇게 자기만의 심리학 체계를 만든 융은 또 한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심리학과 종교의 관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종교적인 원형이 있습니다.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어요. 기도하게 되지 않나요. 인간의 무의식 중에는 엄청난 대상에게 경외심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합리성을 추구하다 보니 현대인들에게 경외심을 안이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류는 점점 정신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융은 나의 무의식에 있는 걸 정확히 인지하고 신심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내가 어떤 절대자를 믿고 있다면 악하게 살 수는 없으며, 우리 마음안에 있는 신심으로 하여금 선하게 하고 힘들어도 의지할 수 있는 데가 있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과학적이진 않지만 설득력은 있다고 봅니다. 모든 정서적 문제의 근본이 되는 '불안'은 개인을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기에 안정감, 정서적 편안함으로 대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융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심'이란 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실례로 아프리카 부족부터 문화를 가지고 있는 민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들은 경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그러한 마음이 원래 장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신은 기독교의 신이라고 한정 짓는 게 아니라 다신론적일 수도 있고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을 이야기합니다. 종교 쪽에서 들으면 강하게 반발한 만한데, 융은 이것을 왜 강조했냐면,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난 집단무의식에 있는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을 때 삶 전체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키너 박스와 조작적 조건 형성 원리, 강화방식과 강화계획 (0) | 2024.01.13 |
---|---|
파블로프의 개, 고전적 조건 형성 원리와 역조건 형성 원리 (0) | 2024.01.11 |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사회적 관심이 중요한 이유, 열등감이 나쁜 게 아니다. 열등 콤플렉스와 우월 콤플렉스 (0) | 2024.01.11 |
원형 이론이란?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양성성 개발의 중요성 (0) | 2024.01.10 |
융의 분석심리학, 프로이트의 개인무의식을 넘어서는 집단무의식 (0) | 2024.01.10 |